‘영원한 비저너리’ 쿠레주, 잠들다

    이영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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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3.21조회수 1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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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스커트와 건축적인 컷 그리고 미래적인 스타일로 ‘혁신적’ ‘비저너리’로 불린 1960년대 패션 아이콘, 쿠튀리에 앙드레 쿠레주(André Courrèges)가 지난 1월7일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90년대부터 활동을 멈춘 앙드레 쿠레주는 지난 30여년간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 파리 근교의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에 위치한 자택에서 영면했다.

    미니드레스와 클린한 라인, 미드-카프 기장의 플랫부츠, 비닐 소재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한 컬러인 올(all) 화이트로 대표되는 스타일은 시대정신을 형성하며 동시대 패션에 유스와 퓨처리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유명 가수 프랑수아 하디(Françoise Hardy)가 1960년대에 그의 드레스를 즐겨 입은 「쿠레주」의 뮤즈이기도 했다. 또한 1965년에 출시된 미셸 델페시(Michel Delpech)의 앨범 ‘인벤토리66’의 노래에 ‘미니스커트, 쿠레주 부츠…’라는 가사가 수록될 정도로 ‘하이-포크(Hi folks)’ 제너레이션이 그의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앙드레 쿠레주는 코클린(그의 아내)과 함께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앞서 나갔다. 그는 21세기를 예견하고 전진한 비저너리(visionary) 디자이너였다. 바로 이런 점들이 「쿠레주」가 지금도 여전히 모던할 수 있는 이유다”라고 쿠레주그룹의 공동 경영인 자크 벙제르와 프레더릭 토로탕은 밝혔다. 프랑스 엘리제궁은 올랑드 대통령이 쿠레주에 대해 “프랑스 오트쿠튀르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지오메트릭 셰이프와 신소재를 사용한 혁신적인 창조자 쿠레주는 스타일과 시대 그 자체였다”고 평했다고 전했다.

    미니스커트와 건축적인 컷, 혁신적 쿠튀리에
    1993년 앙드레 쿠레주와 두 번의 콜래보레이션 작업을 함께한 장-찰스 까스텔바쟉은 쿠레주를 ‘비저너리’라 칭하며 “쿠레주는 일상적인 아이템이 아닌 건축과 디자인에 초점을 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며 당시 점잔 빼던 시대를 통째로 흔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다른 누구도 모방하지 않았고 또 주위 사람들을 챙기는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한편 파코 라반도 “쿠레주는 패션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우리는 피에르 가르뎅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삼총사라 부르곤 했다. 이제는 그 패션의 대가가 떠났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불멸의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쿠레주’라고 하면 주로 올 화이트의 세계를 기억한다. 하지만 진실은 이 위대한 쿠튀리에가 볼드하고 강하게 대비되는 원색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다”라고 문화부 장관 펠르랭은 강조했다. “그는 위대한 셰이프와 컬러 그리고 엘레강스의 세계를 창조해 냈다. 그것은 화려함과 유머, 더 나아가 정신과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라고 덧붙였다.

    파코 라반, 피에르 가르뎅과 함께 ‘패션 3총사’
    1923년 3월9일 프랑스 피레네-아틀란틱 지역의 도시 포(Pau)에서 태어난 앙드레 쿠레주는 건축과 미술에 열정적이었고 패션을 시작하기 전에 엔지니어링 스쿨을 다녔다. 그는 1950년 「발렌시아가」에서 일을 시작했고 11년간 근무한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패션에 대해 배웠다. 「발렌시아가」에서 일하면서 아내가 될 파트너를 만난 그는 1961년 패션 메종 「쿠레주」를 론칭했다.

    그는 의상들의 기장을 짧게 해 영한 느낌을 줬고 팬츠 스타일을 강조했다. 그의 이런 대범한 시도는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성공을 거뒀다. 또한 그의 패션쇼는 제대로 된 콘셉트를 선보이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80년 파리의 ‘자르당 드 플랑’에서 진행된 쇼에 투명한 대형 풍선을 설치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1985년에는 파리 도쿄호텔에서 진행한 패션쇼에서 130여명의 뮤지션을 초대한 대형 패션 & 뮤직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94년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 회사를 지난 2011년 자크 벙제르와 프레더릭 토로탕에게 매각할 때까지 그의 아내가 이끌어 왔다. 그리고 지금 그동안 오랜 휴면 상태에 있던 브랜드 「쿠레주」가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그의 고향인 포(Pau)에 위치한 「쿠레주」의 공장이 2013년 재가동하면서 지난해 봄부터 아르노 바양(Arnaud Vaillant)과 세바스티앙 마이어(Sébastien Meyer) 두 명의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가 영입돼 아트 디렉션을 이끌고 있다.





    쿠레주는 죽었지만 브랜드는 다시 살아나다!
    설립자는 92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브랜드 「쿠레주」에 올해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작하는 희망찬 해가 될 것 같다.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쿠레주」 컬렉션도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진정한 비저너리였던 그는 여성의 움직임이 더 자유롭게 해방될 수 있도록 당시 일반화된 코드를 무시한 그만의 스타일을 선보이며 패션사에 큰 획을 그었다. 독특하고 건축적인 느낌을 표현한 그의 패션은 저명한 프랑스 건축가 겸 산업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린 코르뷔지에의 이름을 따서 ‘오트쿠튀르계의 코르뷔지에(Le Corbusier de la haute couture)’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비닐 소재의 미니드레스와 플랫 부츠, 화이트 컬러에 클린한 실루엣으로 그는 1960년대의 모던한 여성을 위해 혁신적인 A 라인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점차 브랜드의 DNA가 되면서 그가 손을 뗀 1990년대까지 라인이 유지됐다. 이후 2011년 자크 벙제르와 프레더릭 토로탕이 앙드레 쿠레주와 아내 코클린의 완벽한 신뢰를 얻어 브랜드를 공식적으로 넘겨받았다. 노부부는 “우리는 당신들에게 모든 것을 위임합니다”라고 덕담 아닌 덕담을 했고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태스크는 마치 유산처럼 남아 있다.





    ‘오트쿠튀르 코르뷔지에’ 성공적 리론칭 기대
    불확실한 시작과 의혹들 속에서도 「쿠레주」는 굳건히 버텨 냈다. 「쿠레주」의 재기를 불신하고 의혹을 품은 이들은 ‘과연 잠자던 브랜드가 깨어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고 자크 벙제르와 프레더릭 토로탕은 보란 듯이 그들의 입을 막아 버렸다. 포에 위치한 아틀리에에서 12명의 봉재사가 다시 근무를 시작했고, 그들의 노하우(매출의 75%를 차지하는 레디투웨어는 이탈리아에서 아웃소싱하는 니트 제품을 제외하고는 프랑스에서 전량 생산된다)를 전수받고 배우고자 하는 새로운 인력도 계속 고용하고 있다.

    현재 아틀리에에는 25명이 고용돼 샘플 작업, 퀄리티 콘트롤을 하며 물류 시스템도 재개된 상태다. 그리고 지난해 봄, 비밀에 싸인 브랜드 「코페르니」(2014년 ANDAM 수상)를 론칭한 디자이너 듀오 아르노 바양(26세)과 세바스티앙 마이어(25세)를 아티스틱 디렉터로 영입했다. 이들은 브랜드의 신선함을 위해 무엇보다도 혁신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정신을 이어 가고자 한다.
    “우리는 「쿠레주」의 탄생 배경이 엄마들이 그들의 딸처럼 입고 싶어 한 것이었지 그 반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러한 갈망을 이해하는 것을 기초로 미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갈 것이다”라고 듀오 디자이너는 전했다.



    디자이너 듀오 등 새 팀워크, 세계 시장 재도전
    「쿠레주」는 다시 한 번 반짝반짝 빛날 채비를 갖추고 지난해 9월 파리패션위크에 참가, 중요한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여러 컬러로 분배해 영리하게 작업된 15가지 스타일을 착장한 모델들이 각국의 프레스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쿠레주」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듯했다. 최근 룩셈부르크에 매장을 오픈했고 파리 리브 고슈(rive gauche, 강 왼쪽 지역)에 두 번째 매장을 오픈, 또한 유통채널을 재정비해 현재 세계 20개국 250여개 유통망에서 판매되고 있다.

    올해에도 이러한 흐름을 이어 가며 성장에 더욱 속도를 붙일 예정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3~5년 안에 뉴욕, 도쿄, 런던, 서울, 마드리드까지 매장을 오픈한다는 목표하에 중요한 시장을 제대로 커버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프레더릭 토로탕은 최근 이코노믹 뉴스에서 전했다.

    「쿠레주」가 1970년대의 골든 에이지에 300여명의 직원을 두고 매주 4000피스를 전 세계 165개 매장에 판매하던 때만큼은 아니지만 현재 브랜드는 2011년 파리 프랑수아(rue François)가에 위치한 역사적인 첫 부티크의 오픈 이후 레디투웨어 주문 수량이 3배에서 많게는 15배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쿠레주」의 매출은 대략 2000만유로(약 270억원)로 예상된다.



    **패션비즈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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