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빌로 전설「하디에이미」 변신

    정해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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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9.21조회수 8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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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몇 년간 영국 남성복 브랜드 「하디에이미」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클래식에서 컨템포러리로 변화한 것이다. 고객을 젊은층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의류뿐 아니라 잡화와 소품을 동시에 제안하는 등 새빌로에서 최초로 라이프스타일 콘셉트의 테일러링 브랜드로 리포지셔닝하고 있다.

    런던 남성복 컬렉션에서 발표하기 시작한 「하디에이미」의 기성복 라인은 이제 하비니콜스, mrporter.com, 이세탄 등 세계적인 리테일러가 바잉하는 등 패션성과 상업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다. 동시에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이나 타이니 템파(Tinie Tempah) 같은 셀러브리티 베스트 드레서들이 「하디에이미」 슈트를 입기 시작했다. 이제 「하디에이미」는 런던을 대표하는 이른바 핫한 남성복 브랜드로 부상한 것이다.

    구매력 높은 21세기 여미족(Yummy: Young Urban Male)으로 고객을 확대하고 컨템포러리 감성으로 방향을 바꾼 후 「하디에이미」는 GQ나 보그, 레이크(The Rake) 같은 세계적인 잡지와 블로거들이 주목하는 국제적인 남성복 브랜드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지난 1945년부터 새빌로 14번지를 고수하는 새빌로의 오트쿠튀르로 불리는 테일러이지만 「하디에이미」는 역사 속에 정체한 브랜드가 아니라 현대성을 도입한 변화와 개혁을 통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도산 직전 구조된 「하디에이미」 주인 바뀌다

    「하디에이미」의 모든 변화는 오너십이 바뀌면서 시작됐다. 전 오너인 아이슬란드 기업 아레브 브랜즈(Arev Brands)가 「하디에이미」의 자금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을 때 홍콩 베이스의 투자회사 펑 캐피털(Fung Capital Ltd)이 이 회사를 인수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하디에이미」를 리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한 펑 캐피털은 이미 서구 브랜드를 인수해서 운영한 경험이 있는 만큼 브랜드의 잠재 가치와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안목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펑 캐피털은 「하디에이미」를 인수한 후 2012년부터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갔다. 「폴스미스」와 「해킷」 등에서 매니지먼트 팀을 헤드헌트했고 새로운 비전의 젊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메흐메트 알리(Mehmet Ali)를 중심으로 디자인팀을 재정비했다. 36개월이 지난 지금 「하디에이미」는 21세기 남성 고객에게 어필하는 글로벌 컨템포러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부활했고, 이러한 신선한 변모는 국제적인 인기와 관심을 얻고 있다.

    브랜드의 스타일 미학과 포지셔닝을 업그레이드한 것은 물론 「하디에이미」 비즈니스 전략 역시 전격 수정됐다. 과거 주요 수익 채널이던 라이선스를 과감하게 모두 정리하고 이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메흐메트 알리가 디자인하는 컬렉션의 상품으로 글로벌 시장 전체에 어필한다. 더 이상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런던, 뉴욕, 서울, 시드니 등 전 세계 어디서나 컨템포러리 남성들의 기호는 공통되며 이러한 21세기 고객을 위해 「하디에이미」는 동일한 상품을 다양한 시장에 제공한다.

    개혁의 바람 ‘뉴 비전’ 모던 트래디셔널리스트!

    새로워진 「하디에이미」의 키워드는 헤리티지와 모더니티의 결합이다. 이는 컬렉션부터 플래그십 매장 구성은 물론 비즈니스 운영 등 브랜드 전체에 적용되는 콘셉트다. 모든 것은 올드와 뉴의 퓨전으로 구성된다. 일례로 이번 시즌 신상품인 모노그램 가방의 모티브는 1962년 디자인된 헤드오피스 카펫에 짜넣은 로고를 사용했다. 또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클래식한 아이템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통해 「하디에이미」를 컨템포러리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포멀한 턱시도를 모던한 핏으로 바꾸었다. 어깨를 부드럽게 수정하고 전체 길이를 짧게 만들어서 프로포션이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젊게 보이는 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전통과 역사를 현재의 것으로 바꿔 놓는다는 의미에서 「하디에이미」는 스스로 모던 트래디셔널리스트라고 부른다.

    트레이딩 디렉터 닉 프레스턴(Nick Preston)은 올드와 뉴의 콘트라스트를 사용하는 「하디에이미」의 어프로치를 잡지 모노클(Monocle)에 비유한다. “헤리티지와 페디그리, 역사를 현대적인 방법으로 묘사하는 모노클과 유사합니다. 국제적으로 이동이 많은 현대 남성들은 역사적인 것에 관심을 두지만 과거보다는 현대에 살고자 합니다. 모던한 방법을 원하는 것이죠. 샐비지 데님에 디컨스트럭티브 재킷을 입거나 영국 노스햄튼에서 핸드메이드로 만들어진 클래식 구두와 스포츠럭스를 믹스하는 것처럼 현대적인 방법으로 믹스하고 매칭하는 것입니다.”

    믹스와 매칭… 현대 남성들의 옷 입는 방법 반영

    「하디에이미」의 본질은 70년 역사가 있는 테일러링 하우스이면서 동시대 고객이 원하는 프로포션과 현대 생활에서 필요한 기능성, 남성의 데일리 라이프에 필요한 상품 구색을 제공하는 것이다. 젊은 고객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브랜드가 전체적으로 컨템포러리로 기울고 있기는 하지만 「하디에이미」는 다양한 방법으로 편집될 수 있는 상품을 제공한다.

    홀세일 중심의 브랜드라는 특성상 바잉하는 리테일러의 분위기나 가격대, 미학적 측면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제안될 수 있는 것은 「하디에이미」의 강점이 된다. 실제로 영국의 하비니콜스에서는 「제냐」 「휴고보스」와 나란히 제공되는 데 비해 홍콩의 레인 크로포드(Lane Crawford)에서는 「랙앤본(Rag & Bone)」과 「아크네(Acne)」 옆에 위치하는 본격적인 컨템포러리 브랜드로 포지셔닝한다.

    또한 일본의 이세탄 백화점에서는 「매킨토시(Mackintosh)」 같은 브리티시 클래식 브랜드와 함께 위치한다.



    홀세일 중심 + 글로벌 비전 보여 주는 뉴 플래그십

    지난해 10월 오픈한 플래그십 매장은 「하디에이미」의 브랜드 비전을 한눈에 보여 준다. 런던의 다양성과 에너지를 반영하는 매장 디자인은 벽돌과 콘트리트로 된 계산대, 나무 패널로 된 바닥, 유리와 런던 지하철 역을 장식하는 타일 등을 사용하면서 브랜드가 지향하는 특유의 콘셉트인 전통과 현대성을 믹스하고 있다.

    특히 「하디에이미」의 플래그십 매장은 인하우스 의류와 잡화뿐 아니라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의 생활소품, 잡지 등을 큐레이션하면서 새빌로 최초로 남성의 라이프스타일 콘셉트를 보여 준다. 이를 두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2010년대에 하디 에이미 경이 원했을 만한 매장과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디에이미」는 남성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순간에 필요하게 되는 여러 가지 상품을 제공하는 것을 지향한다. 결혼식 같이 특별한 때 입는 톱엔드의 비스포크 슈트부터 휴가를 위한 캐주얼 캡슐 워드로브까지 16세에서 60세의 남성 고객을 위한 모든 것을 「하디에이미」 매장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16 ~ 60세 컨템포러리 젠틀맨 라이프스타일 제안

    매장 내에는 공간을 분리해서 각기 다른 레인지를 디스플레이한다. 기성복 코너에는 캣워크피스, 테일러링, 구두와 벨트, 가방 등의 잡화가 제공된다. 이브닝과 포멀 웨어 부문에는 럭셔리한 메이드투메저(made-to-measure)나 비스포크(bespoke)가 위치한다. 또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시즌별로 큐레이션하는 베스트 브리티시 디자인과 브랜드는 전체 매장에 퍼져 있다.

    주요 큐레이션 브랜드는 자전거 안장 브랜드인 「브룩스(Brookes)」와 바느질용품으로 유명한 「머천트앤밀스(Merchant & Mills)」, 구둣주걱과 옷솔 메이커인 「애비혼(Abbeyhorn)」과 아름다운 지도를 만드는 「허브레스터(Herb Lester)」, 영국산 트위드와 가죽으로 만드는 가방 브랜드 「처치비(Cherchbi)」 등으로 모두 ‘메이드 인 잉글랜드’라는 공통점이 있다.

    런던 출생의 하디 에이미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옷을 디자인한 쿠튀르 디자이너(1952~1989)와 혁신적인 남성복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물론 사교계 인물이면서 동시대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였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1964년에는 남성이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뷰를 제공한 ‘남성 패션의 ABC(ABC of Men’s Fashion)’를 출판하기도 했다.





    영국 남성복 빅뱅! 하디 에이미는 테일러 레전드
    남성복 부문에서 그의 업적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이른바 남성복의 민주화에 기여한 것이다. 1950년대만 해도 새빌로의 고객은 왕족과 귀족, 군대 유니폼 등에 제한돼 있었지만 하디 에이미는 축구선수는 물론 비틀스나 롤링스톤스 같은 뮤지션 등을 패션쇼와 파티에 초대하는 등 하이패션 남성복의 고객이 좀 더 광범위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좋은 스타일은 엘리트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접근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창립자의 아이디어는 지금도 「하디에이미」의 철학이고 플래그십 매장의 ‘오픈 도어 정책’으로 계속되고 있다. 새빌로의 모든 매장은 문이 닫혀 있고 고객이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디에이미」만이 유일하게 항상 문을 열어 놓는 매장인데, 이는 누구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을 위한 매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940년대부터 디자인을 시작한 하디 에이미는 1950년대에 여왕의 드레스 메이커가 된 후 1960년대에는 런던을 대표하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부상했다. 특히 1962년에는 런던 최고의 럭셔리 호텔인 사보이(The Savoy)에서 배경음악에 맞춰 남성 모델들의 캣워크쇼를 선보였는데 이는 최초의 남성 패션쇼로 알려진다.

    남성복 캣워크쇼 효시 브리티시 인터내셔널 브랜드

    「하디에이미」는 두 가지 디자인 철칙을 따랐다. 하나는 헤리티지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작은 것을 디자인하더라도 남에게 동조하지 않고 눈에 띄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아이디어는 지금도 「하디에이미」 스타일의 주요한 원칙이 되면서 올드와 뉴의 콘트라스트 콘셉트를 만드는 바탕이 됐다.

    「하디에이미」는 국내 시장에서 과거의 오너십에 의한 라이선스를 정리하는 긴 과정을 거쳤다. 트레이딩 디렉터 프레스턴에 의하면 대부분의 라이선스 비즈니스는 2013년에 계약이 종료됐지만 기존 이미지를 최대한 씻어 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몇 시즌 동안 한국 시장을 비워 놓았다고 한다.







    “서울은 브리티시 인터내셔널 스타일을 좋아하는 세계 8개 도시 중의 하나로 한국의 남성 소비자들이 새빌로의 컨템포러리 테일러링에 주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홍콩, 유럽 시장에서의 고속 성장에 고무된 프레스턴은 「하디에이미」가 이제 국내 고객에게 소개될 때가 됐다고 보고 있다. 이미 국내 15개 편집매장에서 바잉하는 「하디에이미」는 2016 S/S시즌에 직수입으로 국내에서 론칭할 계획이다.

    현재 「하디에이미」는 국제적으로 전혀 라이선스를 운영하지 않으며 새빌로에서 디자인하는 단일한 비전의 컬렉션 상품을 글로벌 시장에 제공한다. 영국의 해러즈, 미국의 블루밍데일스 백화점을 비롯해 유럽, 미주, 호주, 아시아 등 약 12개국의 백화점과 편집매장에서 판매된다.




    **패션비즈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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